점자 창안의 기초를 한글의 원리에서 찾은 박두성은 한글의 창제과정을 먼저 연구하였다.
점자는 한글을 가로로 풀어쓰는 거나 마찬가지이다(예 : 한글 → ㅎ, ㅏ, ㄴ, ㄱ, ㅡ, ㄹ). 이런 경우 정안인이라면 앞뒤 문맥을 통해 쉽게 짐작을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눈을 감고 있으므로 촉각만으로는 혼동하기 쉽다.
즉, 학교 ㅎ, ㅏ, ㄱ, ㄱ, ㅛ라고 할 때 ㄱ, ㄱ이 연속되기 때문에 오독하기 쉬운 것이다.
박두성은 한글점자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이와 같은 어려움을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던 과정을 이해하면서 극복하고자 했다.
무엇보다 세종대왕이 성삼문 등 8명으로 언문청을 두었다는 데 깊은 관심을 갖고 이를 본떠 1923년 7월, 송암이 손수 키운 당시 재경 제생원 졸업생 유도윤, 이종덕(뒤에 서울맹학교 교장), 노학우, 전태환(뒤에 한국맹인복지협회장), 이종화(뒤에 서울맹학교 교사), 황이채, 김영규, 김황봉 등 8명을 규합하여 조선어 점자연구위원회를 비밀리에 조직하였다.
점자의 기점이 적으면 식별하기 용이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초성(자음)과 종성(받침)에 주로 2점을 배당시키고 중성은 전부 3점으로 했다. 여기서 제한된 배점으로 한 점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 점자체계에 큰 지장이 없는 초성의 'ㆁ'자는 빼기로 했다.
사실 초성은 'ㆁ'자로 풀어 쓸 경우 빼도 무방하다. 다음으로 문장 중에서 사용 빈도가 가장 많은 토(가, 을, 은, 의, 에 등)와 글자 구성이 복잡한 '예', '와', '워' 등의 글자를 모아 약자를 만들었다.
그런데 초성 'ㆁ'을 뺄 경우, '아이'를 점역할 때 뒤 글자 '이'에서 'ㆁ'을 빼면 'ㅐ'로 오독할 우려가 있어 '애' 또한 독립된 약자로 표기하고, 마지막으로 문음 부호, 숫자를 만들었다. 이렇게 지속된 3년 4개월여의 창안 노력 끝에, 마침내 1926년 8월 한글점자의 완성을 보게 되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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